2016.05.14-05.17_리스본

5.14 / 토
코임브라 A 역에서 기차 타고 B 역에서 40분 대기 후 리스본행 기차로 갈아탔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만석. 바나나 향이 이렇게 진했었나. 마주 보고 있는 앞자리 커플은 바나나를 먹고 옆자리 여학생은 공부하고 있다. 리스본 바익사역에 도착해서 숙소까지 찾아가는 길, 광장에 아이돌이 왔는지 소녀팬들의 함성이…. 그 가수가 들어간 호텔 앞에 진을 차고 있는 소녀팬들을 뚫고 숙소에 도착. 너무 친절한 숙소 소개를 받고 침대 정리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숙소에서 나와 패스트푸드점에서 샌드위치와 오렌지 주스를 사들고 타구스 강가로 갔다. 먹이를 바라고 날아온 참새에게 빵조각을 떼어 주며 리스본에서의 첫 식사를 마치고 코르메시우 광장으로 갔다. 민속놀이(?)를 하는 축제를 하는 모양이었다. 외국인들이 굴렁쇠를 굴리는 걸 보고 살짝 충격을 받았는데 여태 굴렁쇠 굴리는 것을 우리나라 전통놀이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88올림픽 때 굴렁쇠 굴리는 소년이 나온 줄. 리스본에 와서야 포르투갈의 맑은 날씨를 만끽하게 되는구나.
알파마 지구 쪽으로 건물구경 사람 구경하며 걸어갔다. 관광객이 많다. 오르막길을 오를수록 바다도 보이고 전망이 좋아진다. 오르다 오르다 보니 저 위쪽 성곽에서 전망을 보는 사람들이 있길래 그곳까지 올라갔다. 가서 보니 그곳은 성조르주 성이었고 입장료는 8.50유로. 살짝 고민하다가 이왕 올라온 김에 리스본 야경을 여기서 봐야겠다 싶어서 들어갔다. 춥지만 않았다면 너무 좋았을 텐데. 칼바람이 불어왔다. 해가 저물어가면서 점점 더 추워졌다. 그래도 리스본이 한눈에 보여서 성곽을 세 바퀴 정도 돌면서 사진을 찍었다. 성곽 올라가는 계단이 좁고 가팔라서 더 어두워지면 위험할 것 같아 성곽에서 내려왔다. 여행하며 느끼는 건 양보를 하면 서로가 너무 편해진다는 거다. 관광객들 대부분 포르투에서 클레리구스 종탑에 갔을 때처럼 서로 양보하고 눈인사를 한다. 셀카 찍고 있는데 먼저 말 걸어주시고 사진 찍어주시는 분도 계셨고. 다들 관광객들이라 그런지 사진 찍는 열정이 대단하다.
성곽에서 내려와서 전망대에서 리스본의 야경을 감상했는데 계속 초저녁 같다가 9시가 가까워져서야 야경다워졌다. 9시에 문 닫는데. 막상 깜깜해지니 숙소 돌아갈 길이 걱정됐다. 다행히 포르투에서 계속 마주쳤던 한국사람이 보이길래 부탁해서 함께 알파마지구를 내려왔다. 리스본에서는 대놓고 마약을 판다. 혼자 있는데 마약 파는 잡상인이 접근했으면 무서웠을 텐데 다행이었다.
코르메시우광장쪽으로 가서 피자랑 파스타 시켜서 같이 저녁 먹고 수다 떨다가 헤어졌다.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와봤으니 앞으로 계속 여행하게 될 거라는 그 분의 말에 공감했다. 내 마음이 그 마음이었다. 여행 오기 전 잠 설쳐가며 걱정했던 게 허무할 정도로 혼자서 씩씩하게 잘 다니고 있다.


너무 귀여워서 밥을 나눠줬다. 
밥을 다 먹으니 밥 먹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날아가서 또 귀여운척했다.




리스본에서 굴렁쇠를 보다니. 굴렁쇠하면 88올림픽, 호돌이만 떠올랐는데.







5.15/ 일
아이고 전화기가 드디어 제대로 고장 났다. 새벽에 충전 완료 불 들어와 있어서 다른 배터리로 갈고 기분 좋게 잤더니. 그건 꿈이었나? 밤새 충전이 하나도 안 됐다. 접선 불량이었던 충전 단자가 아예 망가진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종이지도를 가지고 밖을 나갔다.
어제 저녁 같이 먹었던 분이 시내에서 벨렝지구까지 걸어가는 건 무리일 거라고 그랬지만, 스마트폰을 못 쓰니 버스노선을 찾을 수 없고 타구스강을 따라 쭉 걸어가면 벨렝지구가 나올 거니까 그냥 걸어갔다. 걷다 보니 분홍색의 인파가 나타났다.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는데 한 곳으로 집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핑크리본 마라톤과 비슷한 행사인 것 같았다. 모두 여자였다
걷는 길에 예쁜 계단을 발견해서 강변을 벗어나 그 계단 위쪽의 골목으로 경로를 바꿨다. 골목이 예쁘다. 지나가는 동네 주민들도 예뻐 보인다. 목이 말라서 슈퍼에서 맥주 한 병을 사서 홀짝이며 계속 걸었다. 빈 병도 버리고 비바카드를 충전하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는데 어떻게 충전을 해야 할지 몰라서 포기했다. 매표기에서 20센트를 주웠다. 우리나라의 10원 짜리 같은 것일까. 역에서 나와 다시 강변을 따라 걸었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다. 발견의 탑과 벨렝 탑 구경하고 제로니무스 수도원(엄청난 줄)을 지나 나따가게 (Pasteis de Belem)으로 갔다. 더운 날씨에 포장하려는 줄이 엄청 길어서 매장 안에서 먹고 가려고 했지만, 자리가 나지 않아서 10분 정도 줄을 서고 포장해서 나왔다. 6개들이 상자로 샀는데 걸으면서 하나 꺼내 먹었는데 갓 구웠는지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 살짝 탄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부드럽게 녹는다. 너무 맛있어서 연달아 두 개를 먹고 새로운 골목에 들어섰다. 
타구스강과 반대 방향의 오르막을 계속 올랐다. 그러다 정원(Jardim Botanico d'Ajuda )을 발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입장하려다 직원이 뛰어나와서 입장료 2유로라고 말한다. 통합권이 27유로였는데 어떤 것들의 통합권인지 몰라서 그냥 그 정원 입장권만 샀다. 영어 잘 못 하니까 프렌치는 하냐며 물어보던 직원... 영어 공부해야겠다는 다짐을 100번째 하며 정원구경을 시작했다. 정원 안에 레스토랑이 있어서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가족 단위 손님들만 있는 분위기라 안 들어갔다. 정원은 잘 손질돼 있고 예뻤다. 장미과로 보이는 흰 꽃나무가 있었는데 좋은 향기가 나서 거길 여러번 거닐었다.
정원을 나와서 오르막을 오르는데 젊은 여자가 나따 쇼핑백을 보고 거기 어디 가냐고 물어봐서 콩글리시와 몸짓으로 설명해줬다. 괜스레 뿌듯한 마음으로 가로수가 우거진 골목으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알콜 들어간 사이다 (사그레) 한 병 사서 앉았는데 앞자리 아줌마가 내가 앉아있는 걸 몰랐던지 깜짝 놀란다. 카페를 나와서 골목길을 누비다가 전자수리상을 발견! 아랍계 남자였는데 폰 만져보고 테스트한다고 납땜까지 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내일 낮 1시에 다시 오라길래 내일 호까곶 일정이라 그냥 폰을 돌려받고 나왔다. 혹시 몰라서 가게 위치를 알려달라고 지도를 내밀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서 벗어나 있는 위치였다. 그래서 그 직원과 사장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는 호시우 역에 있는 카멜샵에 가보라며 친절히 지도에 표시해주고 거기로 가는 버스 번호도 적어주셨다. 너무 친절하신 분들이다. 작별인사하고 숙소로 갔다.
종일 뙤약볕에서 걸었더니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퍼졌다. 포르투에서 샀던 와인과 나따를 먹고 벨큐브도 먹고 잤다. 자다가 한국말이 들려서 벌떡 일어났는데 한국사람이 세 명이나 이 방에 새로 들어와 있다. 내일 호까곶가는 사람이 있어서 같이 가기로 했다. 어제 만났던 분과 호까곶 같이 가려고 했다가 폰 고장으로 연락이 되지 않아 막막 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멍멍아







길가에 대뜸 널려있던 하얀 팬티들. 왜죠.




고장 난 스마트폰 때문에 속 앓던 중 길 가다가 우연히 발견한 전파상.
 테스트 해보겠다며 납땜 해보고 숙소랑 가까운 다른 업체 추천도 해주고 - 결국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단 슬픈 이야기.

5.16/ 월
미리씨의 동행들과 호시우역에서 만났다. 신트라 1일권 교통카드를 사서 신트라행 기차를 탔다. 리스본 날씨는 맑고 더웠는데 신트라역에 도착하니 흐리고 춥다. 버스도 늦게 와서 30분 동안 떨면서 기다렸다. 버스 타고 제일 먼저 간 곳은 페나성이었는데 안개가 잔뜩 껴있다. 표 끊고 화장실 가서 혹시 몰라서 챙겨운 히트텍 레깅스와 겉옷을 입었다. 별 기대 안 했던 페나성은 역시 별로였는데 일행들의 실망한 기색은 역력했다. 호까곶에 가기 위해 버스 타고 신트라역으로 다시 갔다. 버스 기다렸을 때 눈여겨봤던 중국집에 가서 짬뽕과 비슷한 국물 요리를 시켜 먹었다. 뜨끈한 국물로 몸도 녹이고 든든하게 배도 채우고 막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호까곶으로 갔다.
모두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도착한 호까곶.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개가 자욱한데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일행들은 제주도 같다며 입을 모았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한국인 단체관광객들도 많아서 더 둘레길 같았다. 아마 꽃보다 할배 방송의 영향으로 이 서쪽 땅끝까지 단체여행 코스에 포함된 듯하다. 젊은 혈기들은 그 추위에도 인생 샷을 건지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그 중 남학생 한 명은 험한 바윗길까지 가서 사진을 찍었다. 혼자 왔다면 추워도 저 끝에 보이는 바위에도 가보고 푸릇한 풀밭을 거닐어보기도 했겠지만, 일행이 있어서 포기. 카페에서 핫초코로 몸을 녹이고 타고 왔던 버스와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가이스까스 역으로 가서 카이스소드레 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역에서 나와서 타구스 강변에 쪼르륵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을 먹기 위해 타임아웃푸드마켓으로 갔다. 어제 붐비기도 붐볐고 건물 밖에서 요리사들이 지친 표정으로 담배 피우고 노숙자가 말 걸어서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깔끔한 푸드코트였다. 각자 메뉴를 주문해서 테이블에 모여 식사를 했다. 테이블 가까이에 있는 와인코너의 상그리아가 인기길래 한 잔 시켜봤더니 맛있다. 딸기류의 과일이 듬뿍 들어가 있는데 도수도 꽤 세고 맛이 진했다. 일행들도 한 잔씩 시켜먹고 작별했다. 미리씨와 숙소로 돌아가다가 아쉬웠던 우리는 호스텔 근처의 레스토랑에서 문어요리에 와인 한잔 씩 더 마셨다. 그래도 아쉬워서 숙소에 들어가 포르투에서 사 왔던 와인을 마저 마셨다. 혼자였다면 불안 불안했을 일정이었는데 일행들 덕분에 무사히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 


 





날도 흐리고 매서운 바닷바람에 너무 추웠던 호까곶.



우리 테이블 바로 뒤에 있던 와인코너. 
 샹그리아에 과일 더 넣어줄까 물어보길래 좋다고 하니 잔뜩 넣어주셨다.

5.17/ 화
리스본 마지막 날. 밤 10시에 세비야행 야간버스를 타야 한다. 야간버스 때문에 일정을 잘못 계산해서 리스본에서 한나절을 더 보내고 세비야는 딱 한 나절만 관광하게 된다. 체크아웃하고 짐은 리셉션에 맡기고 나왔다. 드라이어가 없어서 머리를 말리지 않고 나왔다. 그저께부터 샤워실에 있던 드라이어는 개인이 쓰던 거였나 보다. 마르지 않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유리창에 자꾸 비춰보게 된다. 그렇게 신경 쓰이던 찰나에 미용실을 발견했다. 미용사 아줌마랑 몸짓으로 소통해서 일자 단발로 머리를 잘랐다. 드라이 값도 따로 받았지만, 기분이 상쾌해졌으니 대만족.
애플스토어에서 아이폰을 사야겠다. 다짐했지만, 애플스토어를 찾을 수 없었다. 목이 말라서 슈퍼에서 수퍼복과 애플 사이다를 샀다. 먼저 애플 사이다로 목을 축이고 1일권 교통 패스를 사서 호시우광장 뒤쪽 가로숫길을 걸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이 많이 보였다. 명품매장이 좌우로 늘어서 있는 거리다. 선선하게 바람이 부는 가로수 그늘 아래 노천카페에 앉아 식사하고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보기 좋다. 걷다 보니 커다란 탑이 나왔다. 꼭대기에 사람과 사자의 조각이 있다. 그 탑 뒤로 넓고 긴 잔디밭이 있었고 그 끝에는 조형물과 분수가 있고 관광객들이 많이 있었다. 잔디밭의 좌우로 알록달록한 나무로 만들어진 부스들이 쭉 있었는데 주말엔 이곳에서 마켓이 열리나 보다. 관광객들이 많은 곳까지 열심히 걸었는데 거리가 꽤 멀었다. 분수대 앞에서 사진도 찍고 어떤 사람이 부탁해서 사진도 찍어줬다. 정장에 중절모와 안경을 쓴 멋쟁이 할아버지가 열심히 사진을 찍고 계셨는데 너무 멋있어서 몰래 그 할아버지를 찍었다. 일본인 같았다. 분수대 뒤로도 공원이 있어서 거기도 산책하고 올라왔던 길의 반대편 길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에 보니 오른편에 호수가 있는 공원이 있어서 거기 벤치에 앉아 조각들이랑 오리, 비둘기, 갈매기들 구경했다. 놀이터에서 그네도 타고 노천카페에서 맥주와 연어 샐러드도 먹었다. 다시 길로 나와서 호시우역 방향으로 쭉 걸었다. 걷다 보니 아침에 산 1일권 교통 패스를 써야겠다 싶어서 버스 타고 호시우역으로 갔다. 아침에 스쳐봤던 휴대폰 매장에 가서 고심 끝에 저렴한 스마트폰을 샀다. 속이 후련했다.
28번 트램을 타기 위해 강변을 따라 코르메시우 광장으로 걸어갔다. 노점에서 파는 메그넘 아아스바 하나 사 물고 광장구경하고 사진 찍고 _ 트램 정거장으로 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트램 한 대를 보내고 다음에 오는 트램을 탔다. 사람이 많았지만, 또 금방 자리가 나서 종점까지 앉아서 바깥구경을 할 수 있었다. 종점에서 30분이나 기다려서 28번 트램을 타고 바익사역까지 갔다. 프리허그를 하는 동성애자와 포옹을 하고 호스텔에서 짐을 찾아 나왔다.
오리엔테역까지 전철 타고 이동했는데 역에서 나오니 꽤 춥다. 오리엔테역은 특이하고 예쁘다. 건물 모양에서 야자수가 연상됐다. 바로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시켰다. 사장님이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너무 친절히 알려주신다. 그 카페에서 30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알사버스타는 곳으로 갔다. 가다가 마주친 할아버지한테 알사버스정류장 어디냐고 물어봤는데 엘리베이터까지 잡아주신다. 친절한 분들이 너무 많다. 터미널에 있는 한국인 둘에게 세비야 갈 거냐고 물어보니 자기들도 같은 버스를 세비야에 타고 갈 거란다. 야간버스라서 불안했는데 다행이다.





사진 잘 나왔어요.

멋진 노신사.











28번 트램 창밖으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진 찍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예쁜 오리엔테역 지붕.






그라폴리오